에테르 입장

그 자연주의자의 노트에선 늘 푸른 눈이 내리고 있지
나는 늘 뇌관이 아니라 물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해
이것은 내 폐 속에 살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인어의 멀미에 관한 이야기


ID 비둘기 우유:
나는 아무래도 아무 데로나 갈 것 같다

알수 없는 아이디:
휘발……

ID 미스터 미미:
아무개가 말한 대로 그녀와 나는 지우개 가루를 모으는 명(命)

ID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:
그녀의 이름은 에테르

ID 고래가사는어항:
에테르를 향해 우리는 팡파르를 만들지는 않는다

ID 붉은 백합:
우연히 발견한 찢겨져 나간 연애편지의 뒷부분을 다시 써 보는 심정으로

ID 적적해서그런지:
기분 전환을 위해 기적이라도 필요해

ID 은하해방전선:
선착장에 모여 서로 안대를 씌운 후 요트로 바다를 떠다니는 모임이 있다는데

ID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:
그녀의 이름은 신데렐라88 나는 그녀를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보았어

ID 키싸스키싸스:
그녀는 발끝을 세운 토슈즈처럼, 톡톡톡 횡경막을 뛰어다니지

ID 고래를기르는어항:
그녀를 알게 된 오늘, 비포 선라이즈에서 비포 선셋까지 살고 있다

ID 소규모아카시아밴드:
신데렐라88을 알게 되면 냉장고를 열 때마다 사막이 펼쳐진다고 해
십일월엔 노란 튤립을 토하면서 시를 쓰거나……

아이디 에곤실레님이 등장하셨습니다

ID 에곤실레:
에고 실례

ID 바다속피아노:
어서 오세요
내가 기억하는 존 업다이크 소설 제목은 '내 얼굴을 찾으러.'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음악은 '우리 얼굴 찾으러 갈래?'

ID 토니타키타니:
그녀는 이끼들의 세계사를 알고 있어

ID 에곤실레:
신데렐라88? 아니면 에테르?

ID 토니타키타니:
둘 다

ID 워터멜로우:
이끼로 뒤덮인 채 날아가는 새를 본 적이 있어

ID 목잘린종이인형:
이끼는 가까이서 보면…… 전혀 다르지

ID 워터멜로우:
그녀를 안다는 건 이끼로 두 눈을 적시면서 자는 일……
그런 밤엔 인간은 유령이 들고 있는 인형 같은 거겠군

ID 밤의사육장:
그 러 니 까 인 간 은 인 형 이 들 고 있 는 유 령 이 거 나……

ID 고래를기르는어항:
에테르……

ID 대립을초월하기위해:
곧 세우마 금순아
양화대교 아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자주 서 있지

ID 물뿡:
와우 그녀는 OUR의 분비물

에테르님 등장
모두 침묵

ID 에테르:
필름이 수해를 입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?

필름이 물에 잠겨 있으면 상(像)이 다 벗겨져 나가죠
필름 속에 살았던 시간과 공간과 사물은 다 물에 떠 죽는 거죠
필름으로 빛이 들어가면 흡혈귀처럼 시간들은 부서지지만
필름에 물이 차오르면 그 안에 채집해 두었던 빛들은 모두 익사를 하는 거예요
그런 밤엔 카메라가 공룡처럼 필름을 뜯어 먹는 꿈을 꾸어요
필름은 피를 질질 흘리며 죽어가죠
사진을 더 이상 찍기도 찍히기도 싫어진 건
에테르와 나눈 추억이 모두 수해를 입었기 때문이에요
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그 사진들 속에서 익사했거든요


사진 첨부.JPG


ID 고래를기르는어항:
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

ID 바다속피아노:
구름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다 모여 있어

ID 에테르:
난 여기서 숨이 막혔어요

ID 워터멜로우:
당신 안에 있는 지중해인가요?

ID 토니타키타니:
저건 에테르의 폐활량이야

ID 에곤실레:
젠장 캄캄하다구

에테르가 당신을 초대하고 있습니다
수락하시겠습니까

수락
수락
수락

에테르 무대 뒤로
퇴장
잠시 후
서서히……
암전

 

'.txt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박연준, 예감  (0) 2017.11.21
김주혁  (0) 2017.11.02
백은선, 동세포 생물  (0) 2017.10.29
박상수, 날 수 있어, 룩셈부르크를 찾아가  (0) 2017.10.20
박정대, 그녀에서 영원까지  (0) 2017.10.13